2025.10.02
1
2025.09.16
2
2025.09.08
3
2025.08.21
4
2025.08.25
5
2025.09.17
*본 글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IT 기업의 HR 리더로서 저는 최근 리더들과 대화를 나누며 한 가지를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AI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과 조직을 재구성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변수라는 점입니다. 앞으로 몇 해 동안은 직무 역할이 바뀌기 보다 일하는 방식의 진화가 핵심이 될 것입니다. 과거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방법을 찾던 시대였다면, 이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와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역량이 경쟁력을 좌우합니다. ‘어떻게’는 점점 AI가 해결합니다. 사람의 가치는 문제를 정의하고, 선택하며, 그 선택을 책임지는 데서 증명됩니다.
이 지점에서 자주 떠올리는 문장이 있습니다. 페이팔과 팔란티어 테크놀로지를 창업한 미국의 기업인이자 투자자인 피터 틸은 『제로 투 원』에서 ‘가장 치열한 정중앙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만들라’고 말합니다. 이 메시지는 기술 전략에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인재 전략에도 그대로 겹쳐집니다. 결국 새로운 시장을 만든다는 말은 남보다 문제를 먼저 발견하고, 다른 방식으로 풀어낼 사람을 곁에 두겠다는 뜻이니까요. 이제는 시장과 제품의 ‘0→1’뿐만 아니라 사람도 ‘0→1’의 시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채용은 단순한 인력 수급이 아니라 회사의 미래를 선택하는 행위가 됩니다.
Gemini 생성 이미지
AI 시대, 좋은 문제를 찾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우리가 찾아야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화려한 도구 목록을 줄줄이 말하는 사람보다, 좋은 문제를 끝까지 잡고 늘어지는 사람입니다. 고객의 맥락과 데이터, 현실의 제약을 한 자리에 놓고 지금 이 시점에 풀 가치가 큰 문제를 선명하게 정의하는 사람. 한정된 자원 속에서 무엇을 하지 않을지 용기 있게 고르고, 실패를 빠른 학습으로 바꿔 다음 실험의 속도를 더 올리는 사람. AI를 ‘쓸 줄 아는’ 단계를 넘어, 원하는 산출과 품질 기준을 먼저 언어로 설계해 도구를 지휘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내린 결정에 책임을 지는 태도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기업에서는 이런 사람을 어떻게 알아보고, 또 찾아낼까요? 답을 찾기 위해 저는 여러 회사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현대카드·현대커머셜은 직무 구분 없이 신입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특정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 보다, 어떤 직무를 맡든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는가에 더욱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단 3문항, 문항 당 최대 500자까지만 기술할 수 있는 짧은 자기소개서 분량 또한 차별화됩니다. 분량이 짧을수록 지원자들은 어떤 내용을 담고 어떤 내용을 버릴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현대카드는 업무의 본질과 핵심에 집중하는 일하는 문화를 지니고 있는데 채용의 첫 단계인 자기소개서부터 이러한 철학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카드·현대커머셜은 직무 구분 없이 신입 인재를 채용함으로써 어떤 직무를 맡아도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인재를 선발하고 있다.
유통기업 A사는 다른 각도에서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A사는 리더십 원칙에 “고객을 놀라게 하라”와 “무자비한 우선 순위”를 명시합니다. 집중해야 할 것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을 과감히 내려놓는 태도를 원칙으로 못 박은 것이죠. 이 원칙을 채용 과정에 적용하면, 자연스럽게 “무엇을 포기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지원자가 실제로 어떤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재배치했는지, 그 결정이 조직에게 시간을 어떻게 벌어주었는지, 그 과정에서 데이터와 고객의 목소리를 어떻게 엮었는지를 집요하게 확인합니다. 채용 과정에서 이어진 원칙은 입사 후의 목표관리로 이어져, 해야 할 일만큼 하지 않을 일이 투명하게 공유됩니다. 선택의 품질이 곧 실행의 속도를 만드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금융기업 B사는 책임과 권한을 선명하게 묶는 방식으로 속도를 만들었습니다. 과제마다 최종 의사결정자를 분명히 하고, 그 결정의 근거와 과정, 사후 회고까지 책임 있게 기록합니다. 이 철학이 채용에서는 주도적으로 결정해 본 사람을 가려내는 평가로 이어집니다. 단순한 성과 나열이 아니라 “당신은 언제 문제를 다르게 정의했고, 누구의 어떤 반대를 어떻게 설득했으며, 무엇을 템플릿으로 남겨 다음 사이클의 시간을 줄였는가”를 묻는 질문과 해당 질문의 끝에 “그 결정은, 당신이 결정했나요?”라는 질문이 대표적입니다. 온보딩 단계에서도 회사의 문화와 일하는 원칙을 빠르게 내재화하도록 촘촘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입사 초기부터 결정—실험—학습의 과정을 스스로 익힐 수 있게 합니다.
사례들을 따라가다 보면 공통점이 뚜렷합니다. 가치가 단순히 구호에 머물지 않고, 채용과 평가, 온보딩, 피드백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지원자는 회사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명확히 볼 수 있고, 입사한 사람에게는 그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시간·권한·도구가 주어집니다. 결국 좋은 사람을 잘 뽑는 일은 “누가 더 뛰어난가”를 가리는 경쟁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함께 풀 ‘방식’을 공유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바뀝니다.
채용 공고 속의 단어를 바꾸는 시도도 필요합니다
이제 HR 관점에서 이야기해봅시다. 먼저 채용 공고 속의 단어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역할과 자격 요건을 나열하는 대신, 다음 분기에 실제로 풀 문제를 문장으로 제시해 보는 건 어떨까요? 맥락과 제약, 성공 기준, 심지어 고민했던 방법들까지 담아 두면, 지원자와 회사는 같은 지점을 보게 됩니다. 과제 역시 멋진 결과물을 요구하기보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무엇을 덜 할지 고르는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해 보는 건 어떨까요? AI 이용을 위한 프롬프트를 설계하고, 생성 결과의 근거와 환각 가능성을 스스로 점검해 채택·보류·폐기를 결정하는 과정을 적게 하면, 그 사람의 사고력과 도구 감각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면접에서는 “직장 생활에서 당신이 이룬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요?”가 아니라 “당신이 문제를 다르게 정의해 우선 순위를 바꿨던 순간은 언제인가요?”를 묻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레퍼런스 체크에서도 “무엇을 잘했나”보다 “무엇을 덜 하게 만들었나”를 확인하면 선택의 품질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Gemini 생성 이미지
채용의 단계는 온보딩까지 이어집니다
채용은 오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저는 온보딩을 채용의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입사 전부터 문제와 데이터 접근 권한, 멘토와 의사결정 방식, 분기 목표와 하지 않을 것 목록을 공유하면, 인재는 첫 주부터 확실한 변화를 보여줍니다. 채용팀과 현업이 온보딩 성과를 함께 책임지는 순간, 채용은 조직의 성과와 같은 언어를 쓰기 시작합니다. 실패를 빠르게 배우기로 전환하는 문화, 서로 다른 배경의 의견이 안전하게 충돌할 수 있는 심리적 기반,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과 권한. 이런 토대가 갖춰져야 좋은 사람이 들어와도 좋은 일을 하게 됩니다. 채용과 문화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주 받는 질문 하나에 답하고 싶습니다. “AI 시대가 오면 사람의 중요성은 줄어드나요?” 저는 오히려 반대로 봅니다. AI가 ‘어떻게’를 평준화할수록, 사람의 ‘무엇/왜’는 더 중요해집니다. 같은 도구를 누구나 쓸 수 있는 시대일수록, 어떤 문제를 선택하고 무엇을 내려놓을지 결정하는 힘이 회사의 성패를 가릅니다. 결국 기업 경쟁력은 사람으로 환원됩니다. 좋은 사람을 잘 모시고, 그 사람이 책임을 지고 성장할 수 있게 돕는 회사가 시장에서 오래 버팁니다. 기술이 평준화될수록 채용의 격차가 곧 성과의 격차가 됩니다.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남깁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을 알아보고, 모셔오고, 제대로 일하게 만들 준비가 되어 있나요?” AI가 만든 새로운 풍경에서, 결국 승부를 가르는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통해 0에서 1을 만드는 회사, 그 회사가 다음 시장을 엽니다.
90년생 HR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