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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ond] 브랜드가 브랜드를 낳는 시대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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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업의 마법, 브랜딩∙마케팅. 마냥 멋있다고 하는 것보다 알고 보면 새롭습니다.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이 선보이는 칼럼 ‘B:yond’에서는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가 신선한 시각으로 브랜딩∙마케팅에 대해 풀어 드립니다.
‘B:yond’, 이번화에서는 기업들이 기존 브랜드 대신 독자브랜드를 만드는 이유를 알아봅니다.

*본 글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국내와 달리 해외에서는 자동차 브랜드 제네시스(Genesis)와 현대차의 공통점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두 브랜드는 로고부터 자동차 전시장, 광고까지 다르다. 자동차에 크게 관심이 없다면 두 브랜드를 전혀 다른 회사에서 만든다고 생각할 만하다.

국내에는 잘 알려진 것처럼 제네시스는 현대차가 만든 브랜드다. 2010년대 미국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현대차는 2015년 제네시스를 독자브랜드로 출범시키며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를 선언했다. 이때 현대차가 선택한 것은 기존 브랜드에 고급 차종 하나를 추가하는 일이 아니었다. 아예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별도의 판매망을 만들었다. 그렇게 G80, G90 등 연이어 시장에 나왔다.

이미 잘 알려진 현대차라는 이름을 두고 왜 굳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을까. 새 이름을 알리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생각하면 현대차의 고급차로 판매하는 편이 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미 유명한 브랜드에는 그만큼 강한 이미지가 따라붙는다는 데 있었다. 오랫동안 만들어진 현대차의 이미지 안에 전혀 다른 고급차의 이미지를 함께 집어넣기보다 새로운 이름을 만드는 편이 나았다. 현대차가 제네시스를 출범하면서 현대차와 구별되는 브랜드로 규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대카드 현대커머셜 뉴스룸-하나의 브랜드로 모두에게 말할 수 있을까

GV90 네오룬. 출처 제네시스 공식 홈페이지

1980년대 미국에서는 정반대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브랜드 하나가 만들어졌다. 1984년 나이키는 미국프로농구(NBA)에 갓 데뷔한 마이클 조던과 계약했고, 이듬해 그의 이름을 붙인 농구화 ‘에어 조던 1’을 내놓았다. 처음에는 나이키가 만든 수많은 운동화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새로운 모델이 매년 출시되고 신발에서 의류와 액세서리로 상품이 늘어나면서 에어 조던을 둘러싼 문화도 함께 커졌다. 결국 1997년 ‘조던 브랜드(Jordan Brand)’가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나이키의 상품에 붙었던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이다.

제네시스와 조던은 만들어진 과정은 조금 다르지만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기존 브랜드만으로는 담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생겨,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다는 점이다.

하나의 브랜드로 모두에게 말할 수 있을까

사실 기업의 입장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번거롭다. 소비자에게 이미 익숙한 이름을 두고 다시 새로운 이름과 로고를 알리고 이미지를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강력한 브랜드 아래 가능한 한 많은 상품을 두는 편이 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브랜드가 강력해질수록 오히려 그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기도 한다. 브랜드는 소비자의 선택을 쉽게 만드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이름 하나만으로도 소비자는 상품의 품질과 가격, 이미지를 어느 정도 예상한다. 기업이 오랜 시간 브랜드를 키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소비자의 머릿속에 특정한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은 브랜드일수록 그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기도 어렵다. 제네시스가 이런 경우다. 현대차라는 브랜드가 약해서 새로운 브랜드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차라는 이름이 너무 분명했기 때문에 다른 이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는 조던의 탄생을 설명하기 어렵다. 나이키가 농구와 어울리지 않는 브랜드였던 것도 아니고, 에어 조던을 나이키라는 이름 아래 계속 판매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조던은 기존 브랜드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졌다기 보다 하나의 상품이 독자적인 브랜드가 될 만큼 많은 의미를 갖게 된 경우에 가깝다. 소비자와 상품, 로고와 문화가 쌓이고 나면 더 이상 특정 운동화 한 켤레를 가리키는 이름으로만 남아 있기 어렵다.

현대카드 현대커머셜 뉴스룸-신용카드도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출처 NIKE 공식 홈페이지

결국 독자브랜드는 두 방향에서 만들어진다. 기존 브랜드가 가진 정체성으로는 새로운 소비자를 담기 어려울 때 새로운 브랜드가 필요하다. 반대로 기존 브랜드 안에서 태어난 상품이 충분한 정체성을 갖게 됐을 때도 독자적인 브랜드가 만들어질 수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또 하나의 사회적 변화가 더해졌다. 소비자 자신이 훨씬 복잡해졌다. 예전에는 성별이나 연령, 소득 같은 몇 가지 조건만으로 소비자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었다. 20대 여성, 40대 남성, 고소득 직장인처럼 소비자를 묶고 이들이 선호할 만한 상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그러나 같은 연령과 비슷한 소득을 가진 사람이라도 지금은 돈을 쓰는 곳이 제각각이다. 한 사람은 옷에는 별 관심이 없으면서 여행에는 큰돈을 쓰고, 다른 사람은 자동차에는 관심이 없지만 공연이나 운동에는 아낌없이 돈을 쓴다. 심지어 같은 사람도 어떤 상품에서는 가격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 다른 상품에서는 가격보다 취향을 먼저 따진다. 한 사람 안에서도 여러 명의 소비자가 존재하는 셈이다.

소비자가 이렇게 잘게 나뉘면 하나의 브랜드가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말을 거는 것도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소비자의 취향 하나하나에 맞춰 상품만 계속 늘려 놓으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상품은 많아지지만 소비자가 그 차이를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이때 필요한 것이 상품들을 묶으면서도 기존 브랜드와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또 하나의 브랜드다.

독자브랜드를 단순히 상품을 분류하는 이름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품의 이름은 상품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가 되면 그 이름 아래 다음 상품을 만들 수 있다. 소비자 역시 개별 상품만이 아니라 그 이름이 가진 성격을 이해하고 선택하기 시작한다.

제네시스가 G80 한 대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자동차를 계속 내놓을 수 있었던 것, 조던이 에어 조던 1 이후 수많은 신발과 의류를 담을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상품을 담기 위해 브랜드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브랜드가 다음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릇이 된다.

신용카드도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이런 변화가 자동차나 패션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신용카드만큼 소비자의 취향을 세세하게 나누는 상품도 드물다. 신용카드를 고를 때 소비자는 자신의 생활을 먼저 들여다본다. 외식을 자주 하는지, 여행을 많이 다니는지, 온라인 쇼핑을 많이 하는지에 따라 유리한 카드가 달라진다. 연회비와 할인율, 포인트와 마일리지 같은 숫자를 비교하는 일이지만, 그 숫자의 바탕에는 결국 ‘나는 어디에 돈을 쓰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현대카드의 알파벳도 처음에는 이렇게 서로 다른 소비자를 위한 상품을 구분하는 이름이었다. 2003년 현대카드M이 나왔고 이듬해 현대카드S가 등장했다. 이후 W, A, K, T, U 등 여러 알파벳이 카드에 붙었다. 한 글자의 알파벳으로 서로 다른 소비생활과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20여 년 동안 상품 이름으로 쓰이던 알파벳에 2026년 변화가 생겼다. 현대카드는 새로운 알파벳 상품 하나를 더 내놓는 대신 기존의 알파벳을 모아 ‘알파벳카드’라는 독자브랜드를 만들었다.

현대카드 현대커머셜 뉴스룸-상품의 이름은 언제 브랜드가 될까

출처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

만약 혜택이 다른 카드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별도의 브랜드까지 필요할까? 알파벳카드에 적용된 변화들을 보면 단순히 카드 상품을 하나 더 출시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카드 플레이트에서는 현대카드의 CI를 빼고, 기존 현대카드에서 사용하는 서체와 별도로 알파벳카드만을 위한 서체를 개발했다. 카드를 받아보는 패키지도 새로 만들었다. 할인율이나 적립률 같은 상품의 기능뿐 아니라 소비자가 카드를 보고 받아보는 경험까지 별도로 설계한 것이다.

알파벳의 역할도 달라졌다. 20여 년 전에는 한 글자의 알파벳이 하나의 카드 상품을 구분했다. 지금은 외식, 집, 주유, 쇼핑, 여행, 뷰티, 간편결제, 정기결제 등 서로 다른 생활영역을 상징하는 카드들이 ‘알파벳카드’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들어간다. 앞으로 소비자의 생활방식이 더 세분화되면 새로운 상품 역시 이 이름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알파벳이 걸어온 과정은 제네시스보다는 조던에 조금 더 가깝다. 에어 조던도 처음부터 나이키와 별개의 브랜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상품에 붙었던 이름에 오랜 시간 상품과 소비자, 이미지가 쌓이면서 독자적인 브랜드가 됐다. 현대카드의 알파벳 역시 2003년부터 개별 상품을 구분하던 이름이었다. 서로 다른 시대의 소비생활을 담아온 알파벳이 20년 넘는 시간을 거쳐 이제는 새로운 상품들을 담는 브랜드의 이름이 됐다.

상품의 이름은 언제 브랜드가 될까

상품 하나가 인기를 얻었다고 해서 모두 브랜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름을 단 다른 상품이 등장했을 때도 소비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 특정 상품이 사라진 뒤에도 그 이름이 남아 다음 상품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상품보다 이름의 수명이 길어지는 순간, 상품의 이름은 브랜드에 가까워진다.

기업들이 이미 가진 브랜드 안에서 또 다른 브랜드를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소비자의 취향이 다양해진 만큼 하나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을 설명하기 어려워졌고, 반대로 하나의 상품에 충분한 시간과 정체성이 쌓이면 그 이름은 또 다른 상품을 만들어낼 힘을 갖게 됐다.

20여 년 전 알파벳은 서로 다른 카드를 구분하기 위해 붙인 한 글자였다. 이제 그 글자들이 모여 새로운 상품을 담을 하나의 이름이 됐다. 브랜드가 상품을 낳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브랜드가 또 다른 브랜드를 낳고 있다.

김서윤 하위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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