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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 10년 전,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우버 포 X(Uber for X)' 열풍을 기억하시나요? 우버처럼 성공한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열망은 한국으로도 건너와 '세탁의 우버', '청소의 우버' 등 수많은 O2O(Online to Offline) 스타트업을 탄생시켰습니다. 실제로 2016년 한 해에만 200개가 넘는 플랫폼 스타트업이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그중 살아남은 서비스는 손에 꼽습니다. 대부분은 조용히 서비스를 종료했고, 투자자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혔습니다. 실패의 이유는 다양했지만, 치명적인 공통점은 하나였습니다. 사람이 모일 이유가 없는 '빈 광장'에 무대만 화려하게 지어 올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플랫폼들은 도대체 무엇이 달랐을까요?
Visa: 50년간 깔아온 결제 인프라의 개방
Visa는 1958년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신용카드 사업부로 출발했습니다. 당시의 목표는 단순했습니다. "종이 카드로 외상 거래를 편하게 하자." 이후 50년간 Visa는 묵묵히 전 세계 은행과 가맹점을 연결하는 결제망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2007년에는 전 세계 지역 사업을 통합해 Visa 주식회사를 설립했고, 이듬해 상장하며 당시 역사상 최대 규모의 IPO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출처 Visa
진정한 전환점은 2000년대 중반 찾아왔습니다. 페이팔, 스트라이프 같은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등장하며 결제망 수요가 폭발하자, Visa는 자사의 견고한 결제 인프라를 API 형태로 과감히 개방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수천 개의 핀테크 기업들이 Visa 네트워크 위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냈고, 현재 Visa망에서는 연간 14조 달러 이상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Visa는 처음부터 "우리는 결제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플랫폼 비즈니스라는 개념조차 생소했습니다. 그들은 그저 결제망을 성실하게 구축했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신뢰와 인프라가 자연스럽게 타 기업들에게도 필수적인 자산이 되며 플랫폼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아마존: 서점의 서버가 개발자 생태계가 되기까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1994년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했습니다. 사업 초기, 아마존은 블랙 프라이데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대목에 폭증하는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 서버를 대규모로 확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비성수기'였습니다. 시즌이 지나면 그 비싼 서버 용량의 절반 이상이 유휴 자원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던 아마존은 2006년, 이 남는 IT 인프라를 외부 기업에 빌려주기로 결정합니다. 마침 2003년부터 앤디 재시(현 아마존 CEO)가 주도하여 스토리지·데이터베이스·컴퓨팅 등 내부 개발자들이 쓰기 편한 인프라 환경을 구축해 둔 상태였고, 업계 최고 수준이었던 이 '내부 역량'이 외부로 개방되자마자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출처 AWS
넷플릭스, 드롭박스, 에어비앤비 같은 혁신 기업들이 아마존의 인프라(AWS) 위에서 글로벌 서비스를 구축했습니다. AWS는 마치 레고 블록처럼 개발자들에게 필수 도구가 되었고, 2012년에는 'AWS 마켓플레이스'를 열어 서드파티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그 안에서 솔루션을 사고팔 수 있게 만들며 거대한 생태계를 완성했습니다. 현재 AWS는 200개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아마존 전체 영업이익의 60% 이상을 책임지는 핵심 엔진이 되었습니다.
아마존은 처음부터 "우리는 클라우드 플랫폼이 되겠다"라고 목표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책을 더 잘 팔기 위해 구축했던 내부의 인프라를 외부로 개방했고, 그 위에 수백만 명의 개발자가 모여들며 자연스럽게 거대한 플랫폼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플랫폼의 본질은 건설이 아닌 진화
지금까지 살펴본 두 플랫폼의 여정에는 명확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Visa와 아마존 모두 처음부터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대신 본업에 충실했습니다. Visa는 50년간 결제망을 깔았고, 아마존은 10년 넘게 책을 팔며 서버를 쌓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축적된 인프라와 신뢰가 다른 기업들에게도 가치 있는 자산으로 인식되자, 그제야 그것을 개방했습니다. 플랫폼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였던 셈입니다.
이를 진화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빈 땅에 건물을 올리듯 플랫폼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이미 북적이는 시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진화'한 것이죠. 생태계가 먼저 형성되었고, 플랫폼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2016년 실패한 200개의 스타트업과 Visa·아마존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현대카드: 금융사가 AI 플랫폼을 만들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떨까요? 플랫폼을 '만들겠다'라고 선언한 기업은 많았지만, 실제로 진화에 성공한 사례는 드뭅니다. 특히 금융 분야는 규제와 보안 이슈로 인해 플랫폼 전환이 더욱 어려운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국내 금융업계에서도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카드입니다. 2024년 10월, 현대카드는 독자 개발한 AI 플랫폼 'UNIVERSE'를 일본 대형 카드사인 SMCC에 수출했습니다. Visa가 결제 인프라를 개방했듯이, 아마존이 서버 인프라를 개방했듯이, 현대카드는 데이터 플랫폼을 외부로 개방하며 글로벌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카드도 처음부터 플랫폼을 판매하기 위해 'UNIVERSE'를 만든 게 아니었습니다. 2015년 ‘디지털 현대카드’를 선언해 내부적으로 대대적인 디지털 전환을 진행했습니다. 이후 고객을 분석해 초개인화 마케팅에 힘을 쓰며 AI와 데이터 사이언스 역량을 강화했고, 그 역량이 집약된 'UNIVERSE'가 탄생했습니다.
현대카드 내에서 'UNIVERSE'가 성과를 거둔 이후 대한항공, 이마트, 무신사, 넥슨 등 각 분야 리더 기업들과 PLCC(Private Label Credit Card·상업자 표시 신용카드) 파트너십에 'UNIVERSE'가 활용되면서 생태계가 확장 되었습니다.
특히 현대카드는 '도메인 코스모스(Domain Cosmos)'라는 데이터 동맹 구조를 구축해 파트너사들이 각자의 고객 데이터를 직접 공유하지 않으면서도, 현대카드를 허브로 삼아 협업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2억 6000만 명 규모의 데이터 동맹 회원을 대상으로 4400여 건의 마케팅 협업이 이뤄졌습니다.
현대카드 PLCC 파트너사 협의회
10여 년에 걸쳐 역량과 인프라를 구축하고 현대카드 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까지 함께 하는 생태계를 구축한 것, 이 것이 바로 현대카드의 플랫폼 비즈니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지반이 먼저다, 플랫폼은 그 다음이다
물론 처음부터 '플랫폼 비즈니스'를 목표로 창업해 성공한 사례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플랫폼이 생존할 확률은 극히 희박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사람을 모으고, 동시에 건물을 올리는 '이중고'를 견뎌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앞서 살펴본 기업들의 성공 방정식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본업'이라는 단단한 지반을 먼저 다지는 데 집중했습니다. Visa는 50년간 결제망을, 아마존은 10년간 서버 인프라를, 현대카드는 데이터 사이언스 역량이라는 기초를 묵묵히 쌓아 올렸습니다.
이 기초 공사가 완료된 순간, 그들의 비즈니스는 자연스럽게 플랫폼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미 확보된 고객, 검증된 인프라, 쌓여 있는 신뢰가 있었기에, 그 위에 플랫폼이라는 생태계를 올렸을 때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잘 다져진 지반 위에서 진화한 플랫폼은 실패할 확률이 현저히 낮습니다.
결국 플랫폼은 만드는 것이라기 보다, 단단한 지반 위에서 피어나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화려한 플랫폼을 지을까?"를 고민하기 전에, "남들이 믿고 올라설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지반은 단단한가?"를 먼저 자문해야 합니다. 그것이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재훈 테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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