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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요즘 리더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유독 자주 반복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AI 도구를 도입하면 AX가 되는 건가요?", "ChatGPT 구독권을 전 직원에게 뿌리면 충분할까요?", "AI 교육을 한 번 하면 조직이 바뀔까요?"라는 질문들입니다.
HR 리더로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조금 복잡해집니다. AI 도구의 도입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도구는 분명 업무의 속도를 높이고 단기적인 효율을 끌어올리는 힘이 있습니다. 다만 현장에서 조직을 지켜본 경험상, 도구를 깔아주는 것만으로 조직이 진짜 AI 기반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구가 도입될수록 흥미로운 현상이 반복됩니다. 처음 몇 주는 호기심으로 사용량이 올라가지만, 한 달쯤 지나면 기존 방식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써보니까 좋긴 한데, 굳이?"라는 반응이 늘고, AI 도구는 결국 일부 얼리어답터의 취미처럼 남게 됩니다. 도구는 있지만 조직은 바뀌지 않는 상태. 이것이 많은 기업이 겪고 있는 AX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바꾸게 됩니다. AI 전환은 정말 도구의 문제인가, 아니면 그 도구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의 밀도, 즉 'AI 인재밀도'의 문제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도구를 깔아주는 것과 문화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많은 기업이 AX를 추진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AI 도구를 구매하고 배포하는 것입니다. 전 직원에게 생성형 AI 구독권을 지급하고, AI 도구 비용을 지원하고, 사내 AI 플랫폼을 구축합니다. 그 자체는 분명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그것은 AX가 아니라 단지 'AI 도구 복지'에 가깝습니다.
현장에서 보면, AI를 도입한 조직과 AI가 내재화된 조직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도입된 조직에서는 "AI를 써야 한다"는 압박이 존재하고, 내재화된 조직에서는 "AI를 안 쓰면 불편하다"는 감각이 자리 잡습니다. 전자는 제도의 힘으로 움직이고, 후자는 문화의 힘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도구의 성능이 아니라, 조직 안에서 AI를 자기 업무의 언어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즉 AI 인재밀도(유능한 인재가 모여 있는 정도)가 높은가 입니다.
AI 인재밀도를 높이려는 기업들의 실험
최근 눈에 띄는 것은, 이 인재밀도를 높이기 위해 기업들이 매우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AI 교육을 한 번 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직 안에서 AI를 자발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을 늘리고, 그 경험이 확산되는 구조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 채용 플랫폼 A 스타트업의 경우, 'AX 챔피언'이라는 사내 프로젝트를 기수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강의 형식이 아니라, 구성원이 스스로 업무 속 비효율을 찾아 AI로 해결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AI에게 위임할 수 있는 반복 업무를 탐색하고, 2주 안에 자신만의 AI 도구를 직접 제작한 뒤, 실제 업무에 투입하며 오류를 수정하고 품질을 높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구축한 노하우를 매뉴얼로 만들어 동료들에게 배포하는 것까지 하나의 사이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프로그램의 결과입니다. 1기에서만 18명의 참가자가 두 달 만에 50개의 결과물을 만들어냈고, 그중 상당수는 사내에서 실무 표준 도구처럼 사용될 정도의 완성도를 갖추었습니다. 한 참가자는 개발자에게 유용한 도구를 7개나 제작했고, 대부분이 전사 시스템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비개발 직군에서도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업 운영 조직에서는 고객 문의 답변 메일을 자동화하기 위해 AI를 활용해 구글 시트 기반의 자동화 시스템을 직접 구축했습니다. 코딩을 전혀 모르던 직원이 바이브 코딩으로 앱을 개발하고 배포하는 사례도 등장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단순한 사내 이벤트로 끝나지 않은 이유도 주목할 만합니다. A 스타트업은 참가자의 성과와 기여도에 따라 인사평가 가산점을 부여하고, 코어 업무시간을 단축하며, AI 도구 활용 예산을 기존 대비 2배로 늘리는 등 파격적인 유인을 설계했습니다. 2기 모집에서는 1기보다 더 많은 지원자가 몰리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AI 활용 역량이 높은 인재를 선발해, 동료의 업무를 진단하고 AX를 돕는 'AX 컨설턴트'라는 새로운 전문 직무로 전환 배치하는 것까지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리더가 먼저 배워야 조직이 움직인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흐름이 있습니다. AI 인재밀도를 높이려는 기업들의 시선이 실무자뿐 아니라 리더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대카드·현대커머셜은 최근 260여 명 임원 및 팀장급을 대상으로 생성형 AI 활용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특정 IT 부서가 아닌 조직 전반의 리더를 대상으로 교육을 확대한 것이 핵심입니다. 뉴스 큐레이션, 보고서 요약, 프레젠테이션 자료 작성 등 문서 기반 업무에 LLM을 적용하는 실습이 포함됐고, 웹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바이브 코딩 기초 교육, 엑셀 등 기존 사무 도구와 연동한 업무 자동화 훈련도 병행됐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부서별 실제 업무와 유사한 과제를 활용한 심화 실습입니다. 실제 업무 데이터 구조를 반영한 더미 데이터(Dummy data)를 별도로 제작해 일별 신용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과 변동 위험을 분석하거나, 인사 업무를 지원하는 챗봇을 제작하는 등 부서 특성을 반영한 사례 중심 교육이 이뤄졌습니다. 이론이 아니라 자기 업무의 맥락 안에서 AI를 경험하게 만드는 설계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배경에는 AI를 조직의 핵심 경쟁력으로 내재화하겠다는 경영진의 분명한 의지가 있습니다.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부회장은 "리더들이 실제로 코딩을 할 일은 없겠지만, 기본을 알아야 실무자들과 말이 통한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히기도 했습니다. 리더가 AI를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실무자의 제안을 판단할 수 없고, 의사결정의 속도도 느려지며, 결국 조직 전체의 AX가 지체됩니다. 리더의 AI 리터러시는 단순한 교양이 아니라, 조직의 의사결정 품질과 직결되는 인프라입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LLM 교육에 참석해 임직원들과 함께 실습을 진행하고 있다.
도구 도입을 넘어, 프로세스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현장에서 보면, 인재밀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 순간이 옵니다. 아무리 AI를 잘 쓰는 사람이 많아져도, 기존 업무 프로세스가 그대로라면 AI는 '기존 방식을 조금 더 빠르게 해주는 보조 도구'에 머무릅니다. AI 기반으로 일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진짜 AX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보고서를 작성하는 프로세스를 생각해 봅시다. 기존에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정리하고, 보고서를 쓰고, 검토하고, 수정하는 순서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AI가 내재화된 조직에서는 이 과정이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AI가 데이터 수집과 초안 작성을 동시에 처리하고, 사람은 판단과 맥락 부여에 집중합니다. 기존에 3일이 걸리던 작업이 반나절로 줄어드는 것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구조 자체가 바뀌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조직 전체로 확산하려면,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AI를 활용해서 일해도 된다"는 암묵적 허용이 아니라, "AI를 활용한 방식이 우리의 표준 프로세스다"라는 명시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회의록 작성, 데이터 분석, 고객 응대, 콘텐츠 제작 등 반복적인 업무 영역에서 AI가 포함된 워크플로우를 공식적으로 설계하고, 그것을 조직의 기본 운영 방식으로 정착시키는 과정이 뒤따라야 합니다.
평가와 보상이 바뀌지 않으면, AX는 결국 멈춘다
프로세스 변경까지 갔다면, 마지막으로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평가와 보상 체계의 재설계입니다. HR 리더로서 이 부분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리 AI 인재밀도를 높이고 프로세스를 바꿔도, 조직이 그 변화를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결국 기존 방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AI를 활용해 기존 대비 절반의 시간으로 더 높은 품질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구성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성과 평가 항목에는 'AI 활용'이나 '프로세스 혁신'에 대한 기준이 없습니다. 평가 기준은 여전히 투입 시간, 업무량, 가시적 산출물 중심입니다. AI로 똑같은 일을 반나절 만에 끝낸 사람과, 사흘을 야근하며 완성한 사람의 평가가 동일하거나, 심지어 후자가 더 높은 점수를 받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 구조에서는 AI를 잘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가 됩니다. 빨리 끝내면 더 많은 일이 주어지고, 그 효율성은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사람은 당연히 합리적으로 행동합니다. 보상받지 못하는 행동은 서서히 사라지고, 조직 안에서 AI 활용은 다시 개인의 취미 영역으로 축소됩니다. AX를 추진하면서 평가 체계를 건드리지 않는 것은, 엑셀러레이터를 밟으면서 주차 브레이크를 올려둔 채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현대카드·현대커머셜 임직원들이 LLM 교육에 참석해 실습을 진행하고 있다.
HR은 AX의 '환경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이 모든 흐름을 종합하면, AX에서 HR의 역할은 점점 더 분명해집니다. HR은 AI 도구를 선정하고 교육을 기획하는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AI가 자연스럽게 조직에 스며드는 환경 전체를 설계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AI를 활용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평가 체계가 있는지. AI 기반의 새로운 업무 방식이 공식적인 프로세스로 자리 잡았는지. AI 역량을 키운 사람에게 성장 경로가 보이는지. AI를 시도하다 실패했을 때 그것이 처벌이 아니라 학습으로 연결되는지. 작은 성공 경험이 조직 안에서 빠르게 공유되고 확산되는 구조가 있는지.
이런 조건이 갖춰질 때, 사람은 'AI를 써야 하는 상태'가 아니라 'AI와 함께 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로 전환됩니다. 그리고 그 전환이 조직 전반에 일어날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AX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현대카드·현대커머셜이 수백 명의 리더에게 바이브 코딩 교육을 의무화한 것, A 스타트업이 인사평가 가산점과 새로운 직무 전환이라는 구조를 설계한 것. 이 모든 사례가 보여주는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AX는 도구를 도입하는 순간이 아니라, 사람이 변하고 프로세스가 바뀌고 평가가 따라올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도구로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은 환경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그 환경은 결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인재밀도를 높이고, 프로세스를 재설계하고, 평가와 보상의 방향을 바꿀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저는 이것이 AI 시대에 HR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90년대생 HR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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