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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뉴스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변화하는 화물 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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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타워크레인이 하늘을 가르고, 컨테이너가 벽처럼 쌓인 부산신항 터미널은 새벽부터 생명력이 넘쳤다. 그 분주한 현장 속에서 매끈한 유선형 에어로다이나믹 디자인의 새빨간 대형 화물용 트럭이 태양 빛을 받아 유독 눈에 띄었다. 화물용 대형 트럭은 각지고 투박한 모습일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공기저항을 최소화한 미래 지향적인 캡 디자인은 마치 우주선을 연상케 했다. 흔히 떠올리는 코끼리 귀 같은 거대한 사이드 미러 대신 최신형 전기차에서나 떠올릴 법한 날렵한 카메라가 좌우로 뻗어 있었다. 그렇다고 세련된 디자인만 가진 것은 아니었다. 이 트럭은 자동 변속기와 강력한 엔진으로 25톤도 넘는 40피트 대형 컨테이너도 거뜬히 실을 수 있어 화물용 대형 트럭의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트럭에서 내린 30대 후반의 남성은 당진에서 부산까지 5시간여 새벽 운전의 흔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쾌해 보였다. 최신 내비게이션과 크루즈 컨트롤 등 안전 기능 덕분에 운전 스트레스도 과거에 비해 훨씬 줄었다고 말했다. 화물용 트럭 내부는 고된 노동의 흔적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운전석 안에는 깔끔한 인테리어가 펼쳐졌다. 내부 모습은 고화질 디지털 계기판과 초대형 멀티 터치 디스플레이로 구성되어 미래에 온 듯한 느낌을 줬다. 운전석은 항공기급 에어서스펜션이 적용된 가죽 시트에 요추 지지대, 온열 및 통풍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여느 고급 세단 못지 않은 편안함을 제공했다. 장거리 운행 중에도 불편함이 없게 냉장고, 전자레인지, 침대까지 갖추고 있어 숙박시설 같은 인상도 줬다.
사진 현대자동차
금융부터 디지털까지…변화하는 화물 트럭의 세계
컨테이너 하차와 상차를 기다리는 정민호 씨(38∙가명)는 트럭 캐빈 내 빌트인된 냉장고에서 시원한 커피를 꺼내 건네며 운을 뗐다. 2018년, 그는 30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화물운송업에 뛰어들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 정영철 씨(62∙가명)가 30년 넘게 몸담아온 운송업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그는, 대학 졸업 후 일반 기업에 취업했지만 운송업의 가치를 깨닫고 아버지와 같은 길을 선택했다.
“가장 먼저 어머니가 말렸어요. 아버지 때문에 마음 고생을 너무 하셨죠. 그런데 이젠 택배 없으면 생활이 안되잖아요? 과거와 달리 물류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버지가 닦아 놓은 길 그대로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고 제가 설득했죠.”
그가 젊은 나이에 구매한 트럭은 수억원이 넘는 가격으로 아파트 한 채 값과 맞먹었다.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버지 시대와 달라진 환경은 큰 도움이 됐다. 아버지는 갖은 고생 끝에 당시 큰돈이었던 7000만원을 직접 구해 첫 트럭으로 대우 자동차가 출시한 '차세대트럭'을 구매했다. 반면에 아들은 현대커머셜과 같은 기업 덕분에 상용차 금융을 활용해 8% 내외 금리 5년 상환 조건으로 트럭을 할부 구매해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일감이나 노하우 등도 인맥을 통해서만 구할 수 있었던 아버지 시대와 달리 이제는 금융 업무, 구직, 차량 판매 등이 가능한 ‘고트럭’과 같은 상용차 운전자를 위한 앱이 생겨나면서 전보다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됐다.
사진 현대자동차
내비게이션도 없이 지도 한 장으로 현장을 누빈 베테랑
부산 감만동 근처의 한 물류 사무실, 아버지 정영철 씨가 지인과 장기를 두고 있었다. 오랜 화물 운송 운전의 탓인 지 2020년 허리 디스크 진단을 받은 후 그는 운전은 그만두고 일감 확보와 기사 관리에 힘쓰고 있다. 아버지 정 씨는 1996년, 현재 아들 정 씨와 비슷한 나이에 생애 첫 트럭을 구매했다.
“내가 첫 트럭을 샀을 때 민호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어. 당시 정말 세련된 디자인이었고, 그 차로 참 많은 일을 했지. 일을 쫓아 전국을 다녔고, 차에서만 2주간 생활한 적이 있어. 내비게이션도 없어서 지도만 보고 다녔지. 전화도 원활하지 않아 무전기로 소통 했어.”
정영철 씨는 트럭과 함께 운송업의 흥망성쇠를 몸소 겪었다. 요즘 트럭에는 냉장고와 침대가 기본으로 장착된 것과 달리 아버지 정 씨가 일하던 시절에는 제대로 된 휴게소 조차 없었다. 대신 도로변에 차를 세워놓고 컵라면과 아내가 싸준 차가운 주먹밥을 먹으며 불편한 운전석에 앉아 쪽잠을 자곤 했다. 운전도 불편했다. 운전을 돕는 안전 기능이 없던 탓에 대형 화물차 운전은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집중해야 하는 중노동이었다. 차량 상태가 자동으로 실시간으로 확인되는 요즘이지만 과거에는 차량이 갑자기 이유 없이 고장 나기 일쑤였다. 차량 흔들림이 그대로 전달되는 운전석 탓에 장시간 운전을 하고 나면 안 쑤신 관절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이 버텼다. 경기가 좋을 때는 밤낮없이 일했고, 불황기에는 몇 달간 일거리가 없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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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힘, 물류의 숨은 영웅들
그들에게 화물운송업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었다. 삶의 방식이자 자부심의 원천이다. 불규칙한 생활, 장시간 운전, 신체적 피로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가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아요. 마트에는 물건이 없을 것이고, 공장은 멈출 거에요. 건설 현장도 중단될 것이고, 하다 못해 택배도 없어지겠죠? 화물차 운전자는 경제의 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세대는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이 일을 해왔고, 우리는 그 토대 위에서 더 나은 조건으로 일하고 있어요.”
아들의 말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30년 세월을 도로 위에서 보낸 그에게 트럭은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라 인생의 동반자였다. 그가 첫 트럭으로 번 돈으로 아들의 학비도 대고, 집도 샀다. 회사도 꾸렸고, 이제는 십 수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힘들었지만 후회는 없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다른 세대의 트럭을 몰지만, 그들 안에는 같은 자부심이 흘렀다.
오늘날 물류 산업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 아버지가 몰았던 트럭이 한국 도로를 달리던 시절부터 오늘날 첨단 기능을 갖춘 대형트럭까지, 화물 트럭의 모습은 달라졌다. 달라진 화물 트럭의 모습만큼 물류의 가치는 e커머스의 성장, 당일 배송 서비스의 확대, 디지털 기술의 적용으로 더욱 커지고 있다.
운송인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도전에 맞서며, 한국 경제의 동맥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달리는 운송인의 자부심, 그것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가치다.
이서정 상용차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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